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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봉(お盆:백중 맞이)와 어원에 대해서

오봉(お盆:백중 맞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종래 불교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란분회」(일본어로는 우라봉에)로부터 왔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우란분회(백중맞이)라고 하는 것은, Sanskrit(산스크리트:고대 인도의 문장어, 범어)의 「웃란바나」를 음역한 것으로, 사망자가 저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석가의 십대제자중 한사람이었던 목련(못가라나)이, 자신의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하고 석가모니를 찾아가 상담했더니, 7월 15일에 많은 승려들을 모아 공양을 하면 좋다고 가르쳤다는 고사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옛부터  1년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1월과 7월에 조상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쇼가츠(정월)와 오봉(お盆:백중맞이)으로, 원래는 두개 모두 신도의 소관이었던 것이 헤이안 시대의 신불습합(신도와 불교의 합침)때의 타협책으로서 오봉(백중맞이)의 행사는 불교에 이관 되고, 대신에 정월은 신도의 관할로 보장된 것, 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민속 행사는 쇼가츠(정월)과 오봉(お盆:백중맞이)에 이상하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이 낡은 형태의 오봉(お盆)의 자취로 7월 한달내내 백중 맞이의 행사를 하는 지방도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완전히 정착한 8월 15일의 오봉(お盆:백중 맞이), 그러면, 오봉(お盆:백중 맞이)의 일정은 언제입니까?

 

8월 15일? 아닙니다. 본래는 음력 7월 15일입니다.

NHK의 아나운서들은 대개 「한달 늦은 오봉(お盆:백중맞이)」이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더군요. 요컨대 사실은 오봉이 7월 15일이지만, 이것은 원래 당연히 음력의 7월 15일에 가고 있던 행사이므로, 양력의 7월 15일로 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전혀 오봉답지 않은 때에 오봉을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립니다.

음력은 양력으로 생활하고 있는 일반의 사람에게는 불편해서, 타협책으로 이른바 「중력」을 적용해, 양력에 한달 늦은 8월 15일에 백중 맞이의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 되는 셈이죠.


전쟁 후는 정확히 이 날이 종전기념일(우리나라는 해방의 날이지만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과 일치 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봉(お盆:백중 맞이)의 기분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② 히나마쯔리(ひなまつり)

㉠ 히나마쯔리(ひなまつり)의 유래와 의미

히나마쯔리는 3월일에 여자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라고도 한다. 히나마쯔리는 3월일에 여자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라고도 한다.

기원은 고대 중국에서 3월에 막 태어난 여자아이가 3일 후에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술을 준비하고 강으로 떠내려 보냈다는 고사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3월 3일 물의 축제이고 이 날에는 사람들이 물가로 나와 몸에 붙은 병이나 재앙을 없애는 행사를 가졌다.

이러한 행사가 일본에 전해져 고대 일본에서는 신상에 일어날 수 있는 불결한 일이나 재난등을 인형에 옮겨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 보내면서 액막이를 했는데 이를 히나나가시ひな流し라고 하였고, 이러한 풍습은 일본의 각지에 전해져 그 모습이 남아 있는데 아와시마 신사에서는 3월 3일 전국에서 봉납된 인형을 배에 실어 바다로 떠내려 보낸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 여자 아이들의 인형놀이와 결부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히나인형을 장식하고 여자아이의 무병과 행복을 기원하는 큰 축제로서 확립하게 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이후의 일이다

궁정의 여성들 사이에서 성대하게 행해졌다고 한다 이 행사가 궁정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서민 사이에 보급되면서 현대와 같은 히나마쯔리의 형태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일반서민이 히나인형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明治시대 말경부터이다

 

㉡ 히나인형(ひな人形)의 기원과 의미

헤이안시대에는 귀족여성사이에서 종이 인형에 옷을 입혀서 히이나놀이(ひいな遊び)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이것이 에도 시대에 그 형태가 정리 정착되어 히나마쯔리때에 히나인형을 장식하게 되었다.

히나마쯔리에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것은 여자아이가 예쁘게 성장하고 커서 좋은 인연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바램과 인형에 좋지 않은 재난이나 재앙등을 옮겨 그것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래서 3월 3일이 지나면 바로 치우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는 3월 3일에 장식해 두었던 인형은 소중히 보관해 두었다가 매년 히나마쯔리에 장식하면서 여자아이가 매년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축하한다.

 

㉢ 히나인형 장식하기

히나단상은 1단,2단,3단,5단,7단까지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제대로 인형을 구성한다면 모두 15개가 된다. 하지만, 집안이 좁은관계로 공간에 맞게 1단만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최고 윗단에는 한 쌍의 남녀히나인형을 놓고 그 양쪽에 옆의 그림처럼 등롱을 놓고 그 뒤에는 병풍을 친다. 가장 윗단의 남자히나인형을 오다이리사마(お內裏さま), 여자히나인형을 오히메사마(お姬さま)라고 한다.

 

*** Tip!! : 왜 남자인형은 오른쪽이고 여자인형은 왼쪽일까? ***

사실은 일본의 관동지방과 관서지방에서는 놓이는 위치가 서로 반대이다. 옆의 사진이 바로 관동지방의 형태 남자인형이 바라보는 쪽에서 왼쪽, 이것은 오른쪽이 상위라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한국말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일 뛰어난 부하를 '오른팔','右に出る者はいない'(더 나은 이가 없다) 라는 일본의 관용구,'左遷'-(좌천지위가 낮아짐)이라는 단어에서도 오른쪽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한편 관서지방에서는 여자인형이 오른쪽인데 여성의 힘이 세고 남성과 대등하다라는 의식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현대에서는 히나인형의 대부분이 관동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관동지방의 형식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남녀인형의 위치를 어느 쪽에 두든 상관이 없다고 한다.

 

㉣ 히나마쯔리 지내기

히나인형은 히나마쯔리 10-20일정도 전의 大安의 날에 장식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리고 3월 3일 당일이나 그 전날 저녁에 아기의 할아버지,할머니,친척,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한다. 이 때 먹는 음식에는 생선초밥과 대합장국,시로자케(白酒),히시아라레등이 있다.

*大安日: 음력으로 여행,결혼 등 만사에 길하다는 날

* 히나인형장식의 여러가지 모습

* 1단장식

* 2단장식

* 3단장식

* 4딘장식

* 천황 (天皇, てんのう)

천황의 기원은 고분시대(기원후 2C 말엽부터 7C) 말기인 5~6세기 경 일본 각지에 야마토 (大和) 정권의 오오키미(大王)가 통일 국가를 만들어 천황이라 칭해졌다.

오오키미(大王)는 각지의 왕이 연합하여 뽑은 왕을 말한다.천황의 칭호는 다양하다. 칭호를 보면 7C 중반부터 사용된 칭호로 천황이 하늘에 있는 신의 직계 자손이라는 점에서 인간이면서 신이라는 아라히토가미(現人神), 아키쓰미카미(現御神) 칭호가 일찍부터 사용되었다.

스메미마노미코토(皇孫尊)는 천조 대신의 자손임을 강조한 것의 칭호로 신에게 진상하는 축사나 선명(천황의 명령을 적은 문서)에 종종 등장한다. 十善의 主는 불교의 영향으로 생긴 칭호로 불교에서는 십선계(속세인이 지켜야 할 불교의 10가지 계율)를 지키면 그 공덕으로 왕위에 오른다는 가르침이 있어 천황을 十善의 主 또는 十善의 王이라 부른다.

현재 천왕을 말하는 今上, 유일한 사람이란 뜻으로 一人이라 부르기도 한다. 至尊는 그 이상 있을 수 없는 지엄하신 분이란 뜻이다.

 

* 천황의 지위에 대해서..

- 천황의 국사 행위

4조 [천황은 이 헌법이 정하는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하고, 국정에 관한 권한을 갖지 않는다.]

7조 [천황은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해 국민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국사에 관한 행위를 한다. ]라고 명시하고 다음의 10항목을 열거하고 있다.

1. 헌법 개정, 법률, 정령(政令) 및 조약의 공포

2. 국회의 소집

3. 증의원의 해산

4. 국회의원 총선거 시행의 공포

5. 국무대신 및 법률이 정하는 그 밖의 관리의 임명, 전권 위임장, 대사와 공사의 신임장의 인증(認證)

6. 대사면, 특사, 감형형 집행면제 및 복권의 인증

7. 영전의 수여

8.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그 밖의 외교문서의 인증

9. 외국의 대사 및 공사의 접수

10. 의식의 집행

 

* 천황의 즉위식과 장례식

- 1946년 1월, 천황의 연두 조서 발표.

(짐과 국민 여러분과의 유대는.... 단순한 신화와 전설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천황을 현어신으로 간주하고, 또 일본국민을 타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이라 하여, 모든 세계를 지배할수 있는 운명을 가졌다는 터무니 없는 관념에....)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해서 미국의 압력으로 천황 스스로 자신의 신성을 부인했다.

 

-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천황의 지위

2차 대전 이전의 일본 사회에서 천황을 정치, 군사상의 최고 권력자임과 동시에 국가에 제사를 집행하는 최고의 제사이고, 또한 살아있는 신이어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종교적 세속적인 절대적인 존재였다.

-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천황의 지위

전전(戰前)에 비해 천황의 지위가 크게 바뀌어 일본의 상장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 명시되어 있다.

천황은 국가 및 국민 통합의 상징이므로 국내에 있어서 혹은 국민의 사고 방식에 있어서 분명하게 대립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그것을 초월한 중립적 입장에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위가 상징이라고 인식 되어지는 것은 천황의 비정치화와 비종교화를 뜻하는 것이다.

 

* 명치천황(明治天皇)의 즉위식

명치천황은 孝明천황(1846 ~ 1866)의 아들로서 1860년에 황태자가 되었다.
효명 천황이 1866년 12월 25일에 死去하자 황태자는 해를 넘겨 이듬해인 1876년에 즉위하여 명치천황이 되었다. 명치천황은 즉위 후 1월 27일 효명천황의 장례식을 치렀다. 이 즉위식의 특징은 종래의 즉위식을 가급적 탈피해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 점에 있다.

음양도에 기초를 둔 깃발인 당(幢)과 번을 폐지하고 중국의 예복인 애면(애면)을 폐지하고 신도식의 제복을 채택했다.

 

* 천황의 장례식

천황의 장례식은 1909년 (明治 42)에 제정된 황실복상령(皇室服喪令)과 1926년 10월에 제정된 황실상의령(皇室喪儀令)의 두가지 법령이 법적인 근거로 되어있다.

황실상의령은 대상의의 순서를 규정하고 있다. 대상의라고 하는 것은 大行천황(세상을 떠난 천황), 태황태후(천황의 조모), 황태후(천황의 모친), 황후의 장레식을 말한다.

 

* 왕제국가

세계에 현존하는 28개국의 왕제국가 중에서 국제적인 비중을 갖고있는 나라는 영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의 3개국 정도이다.

 

* 히노마루

정식으로는 일장기(日章旗)라 불린다. 일본이 태양신 천조대신의 자손인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깃발로 되어있다.히노마루는 태양신 자손인 천황을 상징하고 또, 천황의 은덕이 널리 미치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기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1870년(明治3)에 일본의 배에 일장기를 게양하도록 했고 이때 국기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일본의 國歌는 기미가요이다.

 

* すもう 스모 (相僕)

내가 일본 씨름인 스모에 대해 약간의 상식이 있었지만 TV로 경기를 처음 본 것은 약 13년전 첫 해외여행에서 였다. 요즈음은 NHK방송을 서울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스모경기가 한국에서도 낯설지는 않았지만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는 보기가 어려웠다. 첫 해외여행이라 모든 것이 신기하여 호텔방에서 저녁에 TV를 보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매일 밤 늦게 까지 채널을 돌리며 재미있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은 일본에 머무는 동안 낮에는 길거리 TV에서 밤에는 종합뉴스시간에 보여주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나를 스모라는 경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일본사람들이 열광하는 프로야구보다 스모의 인기가 더 세다고 하니 일본인과의 대화에서도 스모의 이야기는 필요한 화제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씨름도 지난날 한라장사 출신 이만기의 기술씨름이 이준희 홍현욱 등 백두장사들을 쓰러트리며 천하장사에 오를 때가 씨름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인기가 있지만 당시에 천하장사는 광고모델로도 많이 나올 정도로 많은 인기를 받았다.

내가 보기에는 일본 스모도 80년대 후반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휩쓸던 시절이 인기의 절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스포츠 신문은 물론 주간지나 일간지의 페이지를 장식하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나를 스모로 빠지게한 유명한 치요노후지(千代の富士)는 26세에 요코즈나(橫綱)에 올랐으며 , 오제키(大關) 시절에는 기타오(北尾)에서 요코즈나가 되면서 후타하구로(雙羽黑)로 바꾼 또 하나의 인기선수, 그후에 요코즈나에 오른 오노구니(大乃國), 혹쿠도우미(北勝海), 아시히후지(旭富士), 그리고 지금은 은퇴한 하와이 출신 고니시키(小錦), 작은 몸집에 최근까지 활동한 데라오(寺尾) 까지 여러 특색있는 선수가 펼치는 경기는 흥미 만점이었다.

 

 

 

 

 

 

 

 

58代 橫綱 치요노후지(千代の富士)

필자가 알고 있는 최고의 선수
키 183 센티 -몸무게 127 kg
1955년생 혹카이도 출신

26세 요코즈나, 35세 은퇴할 동안 우승 31회, 생애통산 807 승

 

60代 橫綱 후타하구로(雙羽黑)

미에켄(三重縣) 출신

오제키 시절의 이름은 기타오(北尾) 수려한 용모로 여성팬의 인기를 누리며 요코즈나에 올랐으나 그후 성적이 좋지 못하여 일찍 은퇴한다

 

61代 橫綱 호쿠도우미(北勝海)

혹카이도 출신

크고 매서운 눈망울이 마치 아오모리 도깨비 마쓰리에 나오는 도깨비의 눈을 닮았다.

상대방을 노려보면 상대가 기가 질릴정도로 눈빛이 날카롭다. 좋은 성적을 올리며 나중에 요코즈나에 합류한다.

 

특히 1987년 당시의 하일라이트는 요코즈나 치요노후지와 오제키 기타오의 마지막 날 대결인데 전승을 기록한 양선수가 대결하는 여름 일본열도가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치요노 후지가 인기를 누렸던 것은 수려한 몸매에 뛰어난 기술이었다. 전승으로 우승은 물론 그후 130승 정도를 무패행진으로 기록하여 그 결과를 보려고 일본신문을 찾아 보았다

그후로 일본연수 시절 스모를 더 흥미있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일본인들을 만나면 스모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흥미로운 것은 치요노후지, 후타하구로, 호쿠도우미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모이며, 오노구니와 고니시키는 거구를 이용한 힘의 스모였다. 최근에 힘이 빠져 힘없이 쓰러지던 고니시키가 아닌 당시 전성기의 고니시키는 가공할 몸집으로 다다키 라는 뺨때리기 기술로 상대방의뺨을 치면서 밀어부칠때는 폭소의 도가니가 되기도 했다.  새로운 강자를 열망하는 팬들의 기대에 기타오(北尾)라는 스타가 나왔으나 기술과 관록의 치요노후지를 넘지는 못하고 단명의 요코즈나로 마친다.

또한 여기에서 치요노후지, 오노구니, 호쿠도우미 3인이 호카이도 출신이며 아사히후지도 아오모리 출신으로 북쪽지방에 장사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유명한 치요노후지도 은퇴할 때가 있는 법, 뒤에 나타난 신예 다카하나다(貴花田)에게 패배한 후 은퇴를 한다. 치요노후지는 그후 진막쿠(陣幕)라는 이름으로 심판과 방송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그 뒤를 이은 일본의 스모 스타는 단연코 다카노하나(貴乃花)이다. 얼굴 모양이 호감을 주는 동안이면서 기술에 능하여 하와이 출신 거인 아케보노와 무사시마루를 이기는 일본의 희망이다.

스포츠에서는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한데 일본 스모에서 지금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은 하와이 출신 거구들이다. 요코즈나에 오른 아케보노(曙), 무사시마루(武藏丸) 가 일본 도쿄출신 다카노하나(貴乃花)와 3파전을 벌이고 있다.

다카노하나는 다카하나다(貴花田)에서 이름을 바뀠는데 몇 년전 산타페라고 하는 누드잡지 모델이었던 미야자와 리에와 염문으로 스모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선수이다. 그는 또한 형인 와카하나다(若花田)와 함께 형제 선수로도 유명하다.

지금 활동중인 선수로서는 고토니시키, 미야비야마, 치요노 다이카이 등이 있다.

현 요코즈나 다카노하나(貴乃花)

 

* 스모의 역사, 기술과 경기방법

- 스모에 대한 일반상식에 대해 알아보자

* 스모

스모는 우리의 씨름과 같은 민속경기 이다. 스모는 '도효(土俵)'라는 직경 4.55미터의 둥근 씨름판에서 경기를 하는데, 발바닥이 아닌 신체의 일부가 닿으면 지게 되고 도효 바깥으로 밀려나면 지게 된다.

스모는 우리의 씨름과는 달리 5판 3승제가 아니라 단판승부이며 하루에 한번의 시합만이 있으므로 한 순간에 승부가 달라진다.  커다란 몸을 가진 스모 선수들은 하루 한판의 경기에 자신의 승부를 거는  것이다.  따라서 스모는 경기가 진행되는 시간보다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 의식을 행하는 시간이 더 많고 일본식 미신에 따른 약간 진귀한 절차가 많다.

 

* 혼바쇼(本場所)와 리키시(力士)

- 혼 바쇼

매년 홀수월에 열리는 여섯차례의 대표적인 경기로서 15간 열일씩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열린다.

◇  1월 : 하쓰바쇼(初場所). 도쿄

◇  3월 : 하루바쇼(春場所). 오사카

◇  5월 : 나쓰바쇼(夏場所). 도쿄

◇  7월 : 나고야바쇼(名古屋場所). 나고야

◇  9월 : 아키바쇼(秋場所). 도쿄

◇ 11월 : 큐슈바쇼(九州場所). 후쿠오카

 

- 리키시 (力士)

스모 선수를 리키시 라고 부르는데, 실력에 따라 10단계로 나눈다.

죠노구치(序口)→죠니단(序二段)→산단메(三段目)→마쿠시타(幕下)→쥬우료(十兩)→마에가시라(前頭)→고무스비(小結)→세키와케(關脇)→오제키(大關)→요코즈나(橫綱)

여기서 상위 3단계인 세키와케, 오제키, 요코즈나를 3약쿠(三役)이라고 한다.

대회가 열리면 리키시들은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시합을 하게 된다. 최고 장사인 요코즈나는 혼바쇼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리키시 중 심의위원회가 선발. 한 번 요코즈나가 되면 계속 그 지위를 유지하며, 우리의 천하장사와 달리 동시에 몇 사람이고 있을 수 있다.

 

* 스모의 진행과정

- 입장준비

선수는 경기장인 도효(土俵)에 오르기 전, 옆에 놓인 물통에서 물을 떠 입을 헹구고, 깨끗한 종이로 입가의 물을 닦아낸다. 이때 바로 앞 게임에서 이긴 선수는 다음에 싸울 같은 편 선수에게 물을 떠주고 승리를 기원하는 반면에 패한 편의 선수는 그냥 퇴장하고 진행위원이 물과 종이를 건네준다.

 

- 입 장

도효에 오른 리키시는 바깥 쪽을 향해서서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구부려 한발씩 들어 올렸다가 내려밟는 의례적인 동작을 행한다. 부정이 타지않고 시합이 무사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것. 그런 후 옆에 놓인 소금을 한 줌 집어서 허공에 뿌린다. 보통 이러한 동작을 3번씩 하게되며 마지막 함성이 나올 때 진짜 경기가 다가왔다고 보면 된다

 

- 대결준비

도효의 중앙으로 나와 바닥에 그어진 흰색 선 앞에서 두 주먹을 바닥에 대고 준비자세를 취한다. 이 때 준비자세를 몇 번이고 풀었다가 다시 취하면서 신경전을 벌인다. 준비자세의 반복은 등급에 따라 횟수의 제한이 있다. 자세히 보면 복장에도 차이가 있다. 무명선수들의 시합은 준비동작 없이 바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대 결

준비자세에서 몸을 힘차게 솟구치며 격돌한다.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도효 밖으로 밀어내면 이기는데, 이용하는 기술에는 약 70수가 있다고 한다. 주먹으로 때리거나 급소를 찌르는 등 반칙을 하면 반칙패 할 수도 있다.

 

* 스모의 기술

언뜻보면 단순해 보이는 스모에는 약 70가지의 기술이 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기술 몇가지를 소개한다.

◇ 요리키리(寄り切り) : 상대방 샅바를 잡아 들면서 토요밖으로 밀어 내는 기술로 가장 많이 나온다.

◇오시다시(押し出し) : 상대방을 밀어서 밖으로 내보니는 기술.

◇ 오쿠리다시(送り出し) : 시합도중 등을 보이는 상대방의 등을 밀어서 쉽게 밖으로 내보내는 기술

◇ 우와데나게(上手投げ) : 상대방의 팔을 끌어 안듯이 하면서 상대방의 샅바를 잡아 들어 던지는 기술로서 통쾌한 맛이 있다

◇ 시타데나게(下手投げ) : 우와데나게와 비슷하나 상대방의 팔 밑으로 손을 넣어 집어 던지는 기술

◇ 기리가에시(切り返し) : 상대방이 밀어부칠때 힘을 살짝 피하면서 역이용해서 이기는 기술.

 

* 퇴 장

승부가 나면 심판인 교지(行司)가 부채 모양의 군배(軍配)를 이긴 선수에게 승리를 선언하면, 진 선수는 그냥 내려간다. 이긴 선수는은 잠시 자리에 앉아 오른 손을 좌우로 흔들어 감사를 표시하고 가끔 올라오는 상금을 받아 간다.

 

* 교지와 요비다시

- 교지(行司)

스모의 심판으로 마치 제사장과 같은 전통복장을 하고 있다. 기무라(木村) 가문과 시키모리(式守) 가문이 세습을 하는데 엄격한 서열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최고위는 '다테교지(立行司)'라 한다.

 

- 요비다시(呼出し)

경기진행을 보조하고 리키시의 이름을 부르는 링 아나운서. 엄격한 서열이 정해져 있으며 그에 따라 역할을 분담한다.

 

* 심판의 판정

일본 스모의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가끔 볼 수 있는 애매한 경기결과에 주심은 심판 4명을 불러 모은다. 이들이 모여서 상의하여 결론을 내리면 항의란 있을수 없이 무조건 복종이다. 우리라나 처럼 선수와 감독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 모래판을 점거하는 사태는 찾아볼 수 없다.

 

동경의 스모경기장 : 국기관(國伎館)

도쿄에서 스모의 거리로 유명한 료코쿠는 료코쿠(兩國) 역 서쪽 출구에서 京葉道路로 향하는 길인데 이곳에 리키시(力士) 상이 서있어 눈에 띈다.특히 도쿄에서 스모대회가 열릴 때는 거리거리마다 긴천을 매달아 놓고 관중들을 즐겁게 하며, 거리 전체가 스모 일색이 될 정도이다.

이곳의 스모의 거리인 료고쿠의 상징이 바로 이 국기관이다. 1·5·9월에 가장 큰 도쿄 스모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스모의 박력이 넘치는 경기를 보고 싶으면 이곳에서 본다. 이곳은 스모 외에 콘서트나 이벤트도 자주 열리는 곳이다.

 

흥미로운 사실

스모선수들의 그 커다란 몸집은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건장한 거인이 왜소해 보이는 스모의 선수들의 체중관리는 힘겨루기의 싸움에서 절대적인 무기이다. 이들은 단체훈련을 받는데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마음껏 먹고 점심을 거르면서 하루종일 피땀을 흘리며 연습을 한다고 한다. 저녁이 되어 지칠 무렵에 자기들이 만든 냄비요리를 먹는데 커다란 솥냄비에  온갖 음식을 넣은 잡탕찌개와 같은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바로 잔다고 한다.

힘든 운동 끝에 과식 그리고 잠을 자면 살이 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리하여 불어나는 체중 때문에 은퇴후에도 성인병을 얻어 단명하는 선수가 많다고 한다.